너의 이름은,

내 이름은 ‘윤웅식’이다.

이 이름은 지금은 돌아가신 할아버지께서 지어주신 이름이다. 돌림자로 심을 식(植)을 쓰고 있으며, 돌림자이기 때문에, 내 남동생도 이름에 식자가 들어간다. 가운데 웅은, 3대 독자(가 될뻔한) 아들이 곰처럼 튼튼하게 자라라는 의미에서 곰 웅(熊)으로 지어주셨다.

성은 윤씨요, 돌림자는 식이니, 온전히 내 이름이라고 할 수 있는건 저 곰 웅자 뿐이란 얘기다. 나와 직접 만나본 사람은 아시겠지만, 난 그렇게 곰같은 몸집은 아니다. 물론 할아버지가 염원하신대로 튼튼하고 건강하고 자라고는 있지만, 곰같은 덩치는 아직도 요원하다. 하지만 대신에 곰같은 지혜를 갖추었으니 그런대로 곰같다고 할 수 있겠다.

그렇게 곰이라는 이름을 갖고 살기를 이십몇년,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에 입사를 하게 되었다. 입사가 결정되고 나서, 차례차례 관련 문서들을 제출할 준비를 하는데, 맨 마지막에 떡하니 있는 “사용할 영어 이름”란. 난생 처음으로 게임캐릭터가 아닌, 내 이름을 내가 지을 기회를 마주쳤다.

그 질문만을 남겨둔채로, 한달여가 흘렀다. 물론 진작에 서류는 다 완성되었는데, 이름만 결정할 수 없었다. 수많은 이름을 생각해보았지만, 영 마음에 드는 것이 없었다. 국민학교/초등학교때 짧은 기간동안 사용하던, 아니, 내게 사용 되었던 scott 이라는 이름도 잠깐 떠올려 보았지만 이 역시 마음에 들지 않는 이름이었다. 이왕 이름을 짓는다면 지금의 나와 연결고리를 만들어두면서도, 내 성격을 나타낼 수 있는 이름이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생각해보면 참 우스운 일이다. 사람이 태어나면 어떠한 성격을 가지길 바라면서 이름을 지어주는데, 이제와서는 내가 자라온 대로의 이름을 지으려고 하고 있으니까. 그래서, 일단은 앞서 주구장창 얘기했던 곰 유래의 이름들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몇가지 후보들이 검색되었다.

그냥 Bear를 쓰는것. 혹은… 베어그릴스라든가. 아니, 이건 아니지. 너무 직접적으로 닿는건 내 취향이 아니다. 게다가 베어, 베어그릴스면 너무 이미지가 명확해서 오히려 내가 이름에 짓눌릴것만 같았다.

라틴어로 곰을 뜻하는 Urs. 우르스, 라고 읽으면 될까. 왠지 뒤에 우르즈 세븐, 이라고 숫자를 붙여야 할거 같기도 하고, 누구도 제대로 읽어주지 않을거 같았고, 일단 마음에 들지 않았다. Urs가 이름에 쓰일때의 변형인 Ursa, Ursus등을 생각해봤지만, Ursa는 여성형이고, Ursus는 입에 붙지 않았다.

다음, Bernard가 눈에 들어왔다. 자세한 뜻은 여기를 참고하자. 간단히 얘기하자면 Bear + Hard이며, 독일어의 베른하르트, 프랑스의 베르나르등이 같은 어원을 공유하고 있다고 한다. 곰처럼 강인한, 오호 이 이름이 나를 여기서 기다리고 있었구나.

버나드, 버나드, 버나드. 나쁘지 않다. 조지 버나드 쇼, 같은 유명인도 있고, 이전에 많이 쓰였지만, 지금은 잘 쓰이지 않는 이름이라 유행에서 비켜간 느낌도 좋았다. 고지식하고, 깐깐한 이미지. 하지만 그럼에도, 그 뿌리에 닿아있는 곰이라는 유래가 어쩐지 든든하다.

그렇게, 내 이름은 버나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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